"JUST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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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 HAPPY"

관리자 0 2009.12.26 17:55

전 날 내린 눈으로 응달진 비탈길에 살얼음이 살짝 언 십일월 중순.
수녀님들의 종신서원식이 있어서 포천에 다녀왔다.
종신서원식은 미사 전례안에서 수도자들이 자신의 일생을 종신토록 하느님께 바치기로 서원하는 예식이다.
종신서원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차안에 함께 있던 분들은 종교에 관계없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문득 이십여년 전에 딸을 수녀원에 보내며 하신 친구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수녀들은 한겨울에도 변변치 않은 옷에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닌다. 며 걱정하시던 그 분은 마지못해 못마땅한 딸의 선택을 받아 들였던 것 같다.
이 후 그분은 길을 가다가도 수녀님을 보면 다시 뒤 돌아 보는 삶을 사셨을 것이다.
내가 종신서원식에 다녀왔던 수녀회는 1877년 영국에서 설립된 마리아의작은자매회이며 임종자들에게 봉헌된 수도회이다.
1963년 호주관구에서 수녀 2명이 강릉지역에 파견되어 갈바리의원을 열었으며 이 후 갈바리의원/호스피스는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호스피스를 시작한 곳으로 한국 호스피스의 모태가 되었다.
사람은 태어날때의 모습과 환경이 다 다르듯 임종의 순간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임종의 시기는 평균 수명을 견주어 볼 때 너무나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수명을 훨씬 넘어선 이들도 많을 것이다. 누가 이를 불평할 수 있을까. 또한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개인의 의지로 가능한 부분이 아니지 않는가.

너무나 단란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 한장이 갈바리호스피스 소식지에 실린적이 있다.
그리고 나무와 꽃이 그려진 10살짜리 어린 소녀의 편지가 있었다.
엄마, 앞으로는 안 아팠으면 좋겠고 힘내세요. 홧팅! 앞으로는 기도 열심히 한테니까 병이 나았으면 좋겠네요. 전 엄마가 이겨
리라고 믿어요. 
그림의 뜻, 나(꽃)를 지켜주는 엄마(엄마).
말기암환자인 엄마의 쾌유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이 한 눈에 보이는 이글과 그림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일찍 세상을 
난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있던 난 새삼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그리고 미안해요.

올봄 왕벚꽃이 활짝 핀 날, 이 가슴 아린 사연을 갖고 있는 <세실리아그네>에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며 다시금 그 가족의 행
을 빌어보았다.
<세실리아그네>는 이 아이의 엄마 세례명이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면서 엄마가 그리울때 이 그네의자를 기억하라고 갈바리
원에 기증한 것을 수녀님들이 <세실리아그네>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갖가지 개인사를 안고 임종을 준비하는 호스피스병동, 결코 짧지 않은 이러한 만남을 통해 그동안 살아온 삶을 마무리 할 수 
도록 돕는 일은 참으로 숭고한 것 같다. 누군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쉽게 떠날 수 있을까. 하지만 살아온 날을 돌이켜 보고 
지막 순간을 잘 정리하는 것 또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또 하나 소개하고 싶은 글은 같은 수녀회의 소식지인 동행에 실렸던 글로 갈바리호스피스에 입원했던 38세의 젊은 엄마의 아
들과의 아름다운 작별인사이다.
엄마가 너희가 다 성장하도록 함께 있어주지 못하고 먼저 떠나서 정말 미안해. 용서해 줄 수 있니?.
엄마가 미리 너희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축하해 줄께.
중학교 졸업을 정말 축하해.
고등학교 입학을 축하한다.대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출하해. 수고했다.

너의 꿈을 잘 일구어 가렴....
좋은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기를 낳았구나, 엄마가 돌봐 주지 못해 미안해...
살면서 힘들거나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하늘을 봐. 거기에서 엄마가 지켜봐 줄께
하지만 너무 자주 하늘을 쳐다 보는 것은 엄마가 원치않아.

환한 미소로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시는 호스피스병동의 수녀님들, 그리고 다시금 이들을 위하여 종신서원하시는 수녀님들을
보며 내가 살아온 모습을 잠깐 뒤돌아 본다.
지금, 이순간 우리가 할 일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JUST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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