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가정방문 호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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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가정방문 호스피스)

봄꽃 0 409 10.02 11:23



차창 너머로 사계절을 만난다.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여름에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은 영화 속 장면처럼 유리창 밖을 스쳐 지나간다. 방문 가는 길이 건물 숲과 도시의 신호등이 아닌, 길 위의 자연이라는 것에 감사하며... 우리는 누군가의 마지막 계절을 만나러 간다.

 

호스피스라고 하면 병원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능하다면, 그리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가 평생 생활한 공간,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서 보다 더 인간답게 삶의 끝자락을 지낼 수 있다. 가정방문 호스피스팀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간다.

 

우리 팀은 환자가 고통 없이 존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한다. 1회를 기본으로, 필요 시 주 2~3, 긴급한 상황에는 즉시 달려가거나 영상통화를 하기도 한다. 통증을 조절하고, 암으로 인한 오심, 구토, 배변 장애, 영양제 투여 등 다양한 증상을 관리하며, 집에서 임종할 수 있도록 환자의 손을 잡고, 가족의 눈물을 받아주며 함께 한다.

 

강릉에 있는 우리 병원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 속초에서 동해, 삼척, 평창과 진부까지

장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폭설도 뚫으며 고통받는 환자분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 길 끝에서 마주하는 환자와 가족의 따뜻한 미소는 장거리의 고단함을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여준다. 마지막 순간, 가족 안에 흐르는 사랑을 함께 한다는 건 언제나 큰 특권이며 깊은 은총이다.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따뜻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매번 환자와 가족의 곁에서 배운다. 삶의 끝자락을 함께 걸으며, 우리는 오늘도 가장 인간다운 순간을 만나러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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